"맥박, 혈압, 혈액검사 등을 통해 사람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듯이 산업설비에서 나오는 진동, 온도, 압력 등을 읽으면 설비 상태와 문제를 알 수 있다. 산업AI(인공지능)와 딥러닝을 결합한 '디지털 브레인'을 통해 산업설비의 지능화 시대를 이끌겠다."
윤병동 원프레딕트 대표(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산업AI라는 거대한 기회의 시장이 열리고 있다"면서 "인터넷과 모바일 산업에서 목격한 성장세가 재연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 블루오션에서 새로운 성장신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평소 대학교수들이 개발한 좋은 기술들이 은퇴와 함께 버려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온 윤 대표는 기술이전 등이 여의치 않자 2016년 10월 직접 창업에 도전했다. 서울대학교에 보금자리를 튼 회사에는 제자 3명이 동참했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회사는 발전소 터빈, 풍력발전기 베어링 등 설비의 고장 위험성과 잔여수명을 예측하는 PDM(예지보전) 솔루션 '가디원'을 개발해 에너지발전, 석유화학, 반도체 등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작년 서울 강남 테헤란로로 본사를 옮긴 회사는 위드 코로나 전환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계를 위한 건강검진 솔루션을 개발하다="피검사, 소변검사, 체온, 혈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의 건강상태와 질병 여부를 알아내듯 산업현장에도 무수히 많은 센서들이 있다. 다만 사람은 전체적인 시스템이 같지만, 산업설비는 석유화학공장, 제철소, 반도체공장 등 현장에 따라 환경부터 센서, 데이터까지 훨씬 다양하다는 게 차이점이다. 보일러 터빈 같은 극고온, LNG 플랜트 같은 극저온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는 설비에서 나오는 신호를 읽어서 상태와 문제 여부, 고장 위험성, 잔여 수명 등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 대표는 그 해답을 산업 현장의 도메인 지식이 집적된 산업 AI와, 주어진 데이터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는 딥러닝에서 찾았다.
그는 "딥러닝이 부상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를 산업 현장에 적용해 가치를 만들고자 시도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산업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는 딥러닝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고, 산업별 전문 지식이 결합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어진 데이터만으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 딥러닝은 학습모델을 만드는 데만 최소 수개월이 필요하고, 현장별로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 보니 한 현장에서 적용한 모델을 다른 현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
◇물리적 지식 결합해 AI의 정확성·속도 높여= 윤 대표는 "딥러닝은 많은 양의 데이터를 이용해 학습하는데 수개월이 걸리는데, 산업현장에서 학습모델 개발에만 6개월이 걸린다고 하면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훨씬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비효율적이고 느린 접근을 한다는 것. 이와 달리 산업AI는 이미 가진 물리적 지식과 데이터를 결합함으로써 훨씬 적은 데이터로 정확하게 패러미터를 튜닝해주는 게 강점이다.
적용 현장이 달라도 물리적 지식은 같은 만큼, 현장마다 수개월이 걸려 학습모델을 만드는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한 현장에서 개발한 기술을 다른 현장에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 원프레딕트가 개발한 가디원도 딥러닝을 활용하지만 원시 데이터 대신 물리적 지식을 한번 더 가공해서 적용하는 게 다르다.
윤 대표는 "산업AI를 활용하면 산업현장이 달라도 물리적 지식은 같은 만큼 2주 정도의 패러미터 최적화 기간만 거치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빨리 적용하고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험·직관을 '디지털 브레인'으로 대체한다=아직 대부분의 기업은 현장설비 운용·관리를 전문가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고, 문제가 생긴 후 사후대처를 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와 달리 현장의 센서에서 나오는 물리적·화학적·전기적 신호를 산업AI와 디지털 트윈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브레인으로 분석하면 현장을 가지 않아도 원격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상태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가상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에서 실제와 유사하게 구현된 설비와 내부를 보면서 상황을 알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 처방을 함으로써 설비 가동률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윤 대표는 "가디원을 활용하면 터보머신, 베어링, 모터 등 설비 운영과정에서 기존 룰 기반 관리로 인해 발생하던 고질적 다운타임과 불필요한 정비 비용, 휴먼 에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발전·석유화학 등 거대 설비 운영에 적용= 회사는 설립 첫해 발전터빈 상태 진단 알고리즘과 풍력발전기용 '가디원 윈드'를 개발했다. 작년에는 터빈, 원심압축기, 펌프 등 회전설비의 진동과 운영 데이터를 분석해 기기 상태와 원인을 진단하는 '가디원 터빈'도 완성했다.
산업 설비의 베어링에서 측정된 진동 데이터를 분석해 건전성을 관리하고 미래 상태를 예측하는 '가디원 베어링'도 선보였다. 분석·예측결과는 컴퓨터 상의 3D 영상으로 제시돼 비전문가도 쉽게 고장위치나 고장확률을 확인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최근에는 솔루션의 저변과 확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하고 있다. IoT 표준화와 개별 제품 통합을 통해 주변 설비로 확장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연결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변전설비 온라인 진단 솔루션과 스마트팩토리 환경에 맞는 회전체·모터 진단 솔루션도 개발 중이다.
그동안 에너지 발전, 송·변전 등에 주로 적용되던 예지보전 솔루션은 최근 제조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산업AI를 활용해 반도체, 배터리 등의 불량과 원인을 파악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미지 촬영을 통해 외형을 보고 불량 여부를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 품질에 이상이 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동, 온도, 압력 등 기계적 신호와 전기·화학적 신호를 분석해 판단하는 것.
윤 대표는 "제조분야는 유지보수뿐 아니라 품질, 운영, 생산성이 모두 중요하다. 우리의 차별성은 예측 기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예측을 통해 선제적 조치를 하면 설비 건전성과 품질검사, 대응조치를 하는 동안 생산라인을 멈추거나 많은 불량품이 만들어지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 생산성·품질관리 수요 커져= 윤 대표는 산업 현장의 수요를 보면서 산업AI와 디지털 트윈의 가능성을 하나씩 현실화해 가고 있다.
그는 "우리 기반기술로 고객이 가진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접점을 찾는 게 핵심"이라면서 "업력과 기술력이 쌓이면서 파이프라인이 계속 쌓이고, 학교에서는 기반기술과 기초기술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단위 제품으로 선보였던 PDM 솔루션을 엮어내 '스위트'로 통합하는 한편 생산성과 품질 이슈에 대응한 'PDQ(품질예측)' 솔루션을 확장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PDM의 경우 초기에는 설비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목적이 컸지만 최근에는 공정관리를 통한 효율 극대화, 품질 예측·관리 수요가 커지고 있다"면서 "머신비전 기술로 반도체 등의 결함을 잡아내는 시도를 하던 기업들이 그에 멈추지 않고 전류, 온도, 압력, 진동, 이미지 등 현장 데이터를 읽어 설비 건전성과 제품 품질, 전체 공정효율을 높이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철강,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제조 경쟁력과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를 준비하는 대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이다.
PDM도 진단을 넘어 예지, 처방으로 진화하고 있다.
윤 대표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진단만 하는 게 아니라, 이대로 가면 1년 뒤 큰일 난다는 예측을 해주고, 근본 원인인 술·담배부터 끊고 적합한 약을 복용하라고 처방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면서 "현장의 전문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젊은 인력들은 현장업무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오랜 경험 있는 전문가들의 도메인 지식과 AI를 결합한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내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회사는 발전, 석유화학, 제조,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군의 국내 선두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연내 배터리 분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에스오일, 롯데케미칼, LG일렉트릭, GS파워, 두산, 한국전력공사,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여수광양항만공사 등이 원프레딕트의 솔루션을 이용해서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클라우드, IoT(사물인터넷) 센서 등 주요 인프라 비용이 떨어지고 있어 훨씬 폭넓은 산업군과 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솔루션을 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GS파워와는 최근 파트너십을 맺고 GS파워 안양발전처 내의 주요 발전설비에 산업AI 솔루션을 연간구독 방식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스마트 발전소를 구축해 운영 안정성과 설비 가동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윤 대표는 "매년 신규 고객사의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고, 특정 설비에 솔루션을 적용한 고객이 도입 범위를 확대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생산성과 품질 이슈에 관심이 많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창업 초기부터 회사의 지향점은 글로벌 시장이다. 국내 대표 기업들과 협업해 적용사례와 탄탄한 고객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를 무대로 활약하겠다는 것.
윤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해외 마케팅과 영업에 지장이 있었지만 기술을 알아본 해외 기업들이 먼저 문의를 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식 계약을 앞두고 기술검증 작업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며 "위드 코로나가 본격화되는 만큼 이제는 본격적으로 해외 주요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에너지 발전사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네트워크를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대학 담장을 넘어 테헤란로로= 서울대에 둥지를 틀었던 회사는 사세가 커지자 지난해 강남 테헤란로로 사옥을 옮겼다. 윤 대표가 제자 3명과 함께 시작한 회사는 80명 규모로 커졌다. 3명의 제자는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사옥을 옮긴 이유에 대해 윤 대표는 "나에게는 상징성이 있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안에서 연구소 같은 회사, 아마추어 기업이었다면 기업 같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좋은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위치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처나 잠재고객이 회사를 방문해도 느낌이 전혀 다르고, 일하는 이들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앞으로 30년 더 성장할 수 있는 젊은 직원들에게 더 큰 비전과 꿈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산업AI 시대가 오고 있다"=산업AI 시대는 이제 열리기 시작했다는 게 윤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1998년 3G 이동통신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벽돌 크기의 휴대폰이 300만원을 호가하고, 전화만 걸 수 있었다면 이후 기술과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SNS,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이제 모든 것을 휴대폰으로 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지금 산업AI 영역이 바로 인터넷·모바일 영역의 1998년 정도 시기"라면서 "산업 디지털 트윈이란 어마어마한 시장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0년 전후를 닷컴버블 시대라고 부르지만 2000년 후 인터넷 산업은 1만2000배가 커졌다. 이제 막 시작된 이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로 글로벌 시장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출처 : 안경애(naturean@dt.co.kr)기자, 박동욱(fufus@dt.co.kr)기자